TSN KOREA 송동섭 기자 | KBO리그가 외국인 선수의 ‘마지막 선택지’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재도약 무대로 변하고 있다.
초창기 외국인 선수의 성공이 타이론 우즈와 더스틴 니퍼트처럼 한국에서 전설이 되거나 일본프로야구(NPB·Nippon Professional Baseball)로 무대를 넓히는 형태였다면 최근에는 메릴 켈리와 코디 폰세처럼 KBO리그에서 가치를 높인 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로 돌아가는 사례가 늘었다.
네 선수의 성공 경로는 서로 다르다. 그러나 KBO리그가 선수의 기량을 재평가하고 잠재력을 현실로 바꾸는 무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에서 거포로 완성된 우즈
KBO리그 외국인 선수 성공사의 출발점에는 우즈가 있다.
빅리그 무대를 밟지 못한 우즈는 미국 마이너리그와 멕시칸리그를 거쳐 1998년 계약금과 연봉을 합해 9만4천 달러에 OB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에는 검증되지 않은 외국인 타자였지만 첫 시즌부터 리그의 판도를 바꿨다.
우즈는 1998년 42홈런을 터뜨려 당시 KBO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세웠다.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까지 차지하며 외국인 선수도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김동주, 심정수와 구성한 중심 타선은 세 선수의 성을 따 ‘우동수 트리오’로 불렸다. 김인식 감독의 신뢰 속에 한국 투수들의 변화구와 유인구에 적응한 우즈는 이승엽과 리그를 대표하는 홈런 경쟁을 펼쳤다.
우즈는 2001년 올스타전 MVP와 한국시리즈 MVP를 동시에 차지하며 두산의 우승을 이끌었다. KBO리그 5시즌 통산 성적은 타율 0.294, 174홈런, 510타점이다.
한국에서 높인 가치는 일본에서 대형 계약으로 이어졌다. 우즈는 2003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입단해 첫해 40홈런, 이듬해 45홈런으로 2년 연속 센트럴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2005년에는 주니치 드래건스와 2년 총액 10억엔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2006년 47홈런과 144타점으로 두 부문 1위를 석권했고 2007년에는 주니치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다.
우즈는 일본 6시즌 동안 240홈런을 기록했다. 한국과 일본에서만 414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메이저리그 경력 없이도 아시아 야구에서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니퍼트가 보여준 ‘정착형 코리안 드림’
니퍼트의 성공은 우즈와 결이 다르다. 우즈가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면 니퍼트는 KBO리그에서 선수 생활의 전성기를 보내고 은퇴 후에도 한국에 정착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으로 뛰었던 니퍼트는 2011년 두산에 입단했다. 2018년 kt wiz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낼 때까지 8년 동안 KBO리그 마운드를 지켰다.
통산 성적은 214경기에서 102승51패, 1홀드, 평균자책점 3.59, 1천82탈삼진이다. 외국인 투수 가운데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KBO리그 통산 100승과 1천 탈삼진을 모두 달성했다.
니퍼트의 강점은 꾸준함이었다. 203㎝의 큰 신장에서 내리꽂는 직구를 앞세워 8시즌 가운데 6시즌에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다. 포수 양의지와는 ‘영혼의 배터리’로 불리며 두산 마운드의 중심을 이뤘다.
특히 2015년과 2016년 두산의 한국시리즈 2연패에 앞장섰다. 2016년에는 22승3패, 평균자책점 2.95를 기록하며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다.
몸값도 성과에 따라 가파르게 상승했다. 2011년 30만 달러로 시작한 연봉은 2017년 210만 달러까지 올랐다. KBO리그 외국인 선수 최초의 연봉 200만 달러 돌파였다. 8년 동안 받은 연봉 총액은 약 725만 달러에 달한다.
니퍼트는 은퇴 후에도 한국에 남았다.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방송에 출연하며 한국 야구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코리안 드림은 연봉이나 승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선수와 팬, 지역사회가 함께 만든 정착형 성공 사례다.
KBO를 거쳐 30세에 빅리그 데뷔한 켈리
켈리는 KBO리그 ‘역수출’의 기준을 만든 선수다.
탬파베이 레이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켈리는 메이저리그에 오르지 못한 채 2015년 SK 와이번스와 계약했다. 한국에서 4시즌 동안 119경기에 등판해 48승32패, 평균자책점 3.86, 641탈삼진을 기록했다.
2017년에는 189이닝을 던지며 16승과 189탈삼진을 올렸다. 2018년에는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이 기간 켈리는 선발투수로서 이닝 소화 능력과 다양한 구종 운용 능력을 입증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2018년 12월 켈리와 메이저리그 계약을 체결했다. 켈리는 2019년 30세의 나이로 뒤늦게 빅리그에 데뷔했다.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생애 첫 메이저리그 진입이었다.
켈리는 이후 애리조나 선발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2022년에는 200⅓이닝을 던졌고 2023년에는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텍사스를 상대로 7이닝 1실점, 9탈삼진의 역투를 펼쳤다.
2025년 중반 텍사스로 트레이드됐던 켈리는 시즌 종료 후 애리조나와 2년 4천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고 복귀했다. 30세에 데뷔한 투수가 37세에도 연평균 2천만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KBO 역수출의 경제적 성과까지 보여줬다.
다만 2026년에는 23경기에서 8승11패, 평균자책점 5.37로 고전하고 있다. 최근 두 차례 등판에서 각각 6실점하는 등 8월 평균자책점이 8점대까지 치솟았다. 그럼에도 켈리가 메이저리그에서 7년 넘게 선발투수로 생존했다는 사실은 역수출 성공의 기준을 계약이 아닌 지속성으로 끌어올렸다.
폰세, 역수출 계약의 새 기록과 부상의 명암
폰세는 켈리가 개척한 길을 더 큰 계약으로 확장했다.
폰세는 2020년과 2021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20경기에 등판했지만 빅리그에 정착하지 못했다. 이후 일본프로야구를 거쳐 2025년 한화 이글스에 합류했다.
KBO리그에서는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 폰세는 2025년 29경기에서 17승1패, 평균자책점 1.89, 252탈삼진을 기록했다. 다승과 평균자책점, 탈삼진 부문을 석권하며 투수 3관왕과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다.
개막 후 17연승으로 KBO리그 신기록을 세웠고, 252탈삼진으로 단일 시즌 최다 기록도 새로 썼다. 강한 직구에 스플리터와 커터를 효과적으로 결합한 것이 성공 요인으로 분석됐다.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폰세와 3년 총액 3천만 달러에 계약했다. KBO리그를 거쳐 미국으로 돌아간 선수에게 주어진 계약 가운데 최고 수준이었다. 에릭 페디가 2024시즌을 앞두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체결한 2년 1천500만 달러 계약의 두 배였다.
그러나 빅리그 재진입 이후에는 예상하지 못한 부상과 마주했다. 폰세는 지난 3월 콜로라도 로키스를 상대로 5년 만의 MLB 복귀전에 나서 2⅓이닝 1실점, 3탈삼진을 기록한 뒤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정밀 검사 결과 오른쪽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이 확인됐고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2026년 성적은 1경기, 평균자책점 3.86에서 멈췄다.
폰세의 사례는 KBO리그에서의 압도적인 성적이 빅리그 계약을 보장할 수는 있어도 이후의 성공까지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환경 변화와 부상, 더 강한 타자를 상대로 한 구종 경쟁력 검증이 다시 필요하다.
서로 다른 성공이 만든 KBO의 경쟁력
우즈와 니퍼트는 KBO리그 자체가 꿈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켈리와 폰세는 KBO리그가 빅리그 재도전을 위한 경쟁력 있는 플랫폼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네 선수의 시대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즈가 입단한 1998년에는 외국인 선수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당시 KBO 구단은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즉시 전력감을 찾았고 선수들은 아시아에서 생존 기회를 얻었다.
최근에는 역할이 달라졌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KBO리그 성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구속 변화와 회전수, 구종 가치, 제구력, 이닝 소화 능력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KBO 구단에서 개선한 투구 설계가 MLB에서도 재현될 수 있는지가 계약 규모를 결정한다.
외국인 선수에게도 한국은 단순히 경기를 뛰는 장소가 아니다. 안정적인 선발 기회와 체계적인 훈련, 치열한 순위 경쟁 속에서 자신의 기량을 다시 설계하는 무대가 됐다.
2022년 KBO리그 출범 40주년을 맞아 선정한 ‘레전드 40’에 이름을 올린 외국인 선수는 '니퍼트와 우즈'뿐이었다. 니퍼트는 전체 33위, 우즈는 40위에 선정됐다. 한국 야구가 두 선수를 단순한 외국인 용병이 아니라 리그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이제 켈리와 폰세의 뒤를 이을 역수출 후보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 KBO리그에서 성공한 외국인 선수가 더 큰 무대로 이동하는 현상은 선수 유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준 높은 외국인 선수를 한국으로 끌어들이고 리그의 국제적 신뢰도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로 연결된다.
우즈와 니퍼트가 한국에서 전설이 됐다면 켈리와 폰세는 한국에서 다시 출발했다. 이들의 서로 다른 코리안 드림은 KBO리그가 선수의 경력을 끝내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경력을 만드는 무대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