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SN KOREA(티에스엔코리아) 김민제 기자 | 한국 펜싱 여자 사브르 대표팀이 개인전의 부진을 단체전 금메달로 뒤집었다. 중국을 넘어 개최국 일본까지 제압하며 8년 만에 아시안게임 정상에 복귀했다.
전하영(서울특별시청), 최세빈(대전광역시청), 서지연·김정미(이상 안산시청)로 구성된 한국은 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여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사브르(Sabre)는 플뢰레(Foil), 에페(Épée)와 함께 펜싱을 구성하는 세 종목 가운데 하나다. 명칭은 군도 또는 기병용 칼을 뜻하는 프랑스어 ‘sabre’에서 유래했다.
플뢰레와 에페가 기본적으로 검 끝을 이용한 찌르기로 점수를 얻는 것과 달리 사브르는 찌르기뿐 아니라 검날을 이용한 베기 공격도 득점으로 인정한다. 머리와 팔을 포함한 허리 위 상체가 유효 공격 부위여서 빠른 공격과 순간적인 판단, 폭발적인 움직임이 경기의 핵심으로 꼽힌다.
한국 여자 사브르는 2014년 인천과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연속 우승했지만 항저우 대회에서는 일본에 가로막혀 동메달에 그쳤다. 이번 우승으로 2018년 이후 8년 만에 아시안게임 단체전 왕좌를 되찾았다.
특히 이번 금메달은 개인전에서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얻지 못한 뒤 만들어낸 반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던 전하영은 이번 개인전에서 8강에 머물렀고 김정미도 16강에서 탈락했다. 2002년 부산 대회부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열린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한국 선수가 시상대에 오르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개인전 결과는 단체전 대진에도 영향을 미쳤다. 단체전 시드가 개인전 성적을 토대로 결정되면서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연이어 상대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대진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단체전에 들어서자 흐름이 달라졌다.
한국 선수들은 개인전 결과를 뒤로하고 팀플레이에 집중했다. 준결승에서는 중국을 꺾었고 결승에서는 개최국 일본과 맞붙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 준결승에서 일본에 패했던 기억까지 걸려 있는 설욕전이었다.
대표팀은 초반부터 적극적인 공격으로 일본을 압박했다. 최세빈과 전하영, 서지연이 차례로 경기에 나서며 주도권을 잡았고 서지연이 경기 도중 무릎 부위에 충격을 입자 김정미가 교체 투입돼 힘을 보탰다.
한국은 마지막까지 리드를 지키며 금메달을 확정했다. 개인전에서는 누구도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던 네 명의 선수가 단체전에서는 함께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전하영에게는 심리적인 반전도 컸다.
그는 개인전 탈락 이후 자신의 경기력을 돌아보면서 기술보다 마음가짐의 문제가 컸다고 판단했다. 단체전에서는 결과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경기를 즐기는 데 집중했다.
전하영은 개인전 결과 때문에 단체전에서 어려운 대진을 받았다는 책임감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전날 한국 남자 사브르 대표팀이 단체전 4연패를 달성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본 것도 동기부여가 됐다고 설명했다.
최세빈에게도 이번 우승은 특별했다. 현재 대표팀 선수 가운데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경험한 유일한 선수인 그는 당시 동메달을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로 바꿨다.
대표팀의 유일한 1990년대생인 33세 서지연은 이번 대회를 처음이자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라는 각오로 준비했다. 첫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김정미도 결승전에서 교체 선수로 투입돼 정상 탈환에 힘을 보탰다.
한국 여자 사브르의 시선은 이제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Los Angeles 2028 Olympic Games)으로 향한다.
한국은 이미 올림픽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단계적으로 역사를 바꿔왔다.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는 사상 첫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했고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동메달에서 은메달까지 올라선 만큼 다음 목표는 분명하다. 아직 한국 여자 사브르가 이루지 못한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이다.
전하영은 LA 올림픽까지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며 큰 부상 없이 준비해 단체전 세계랭킹을 유지하고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최세빈 역시 LA에서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메달을 함께 노리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그 가능성을 확인한 무대가 됐다. 한국은 개인전에서 메달을 얻지 못했지만 단체전에서는 중국과 일본을 연이어 넘어섰다.
특히 사브르는 한 선수가 절대적인 기량을 갖췄다고 해서 단체전 우승을 보장할 수 없는 종목이다. 세 명의 주전과 한 명의 교체 선수가 경기 흐름에 따라 역할을 나눠야 하고 상대 선수별 전술 대응과 점수 관리도 중요하다. 이번 금메달은 전하영을 중심으로 최세빈과 서지연, 김정미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도쿄 동메달에서 파리 은메달, 그리고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이어졌다. 이제 한국 여자 사브르가 겨누는 곳은 LA 올림픽 시상대의 가장 높은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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